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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1Y

내 눈에 엘이디

2026.01.20 18:58

a11y 조회 수:408

밝은 대낮에 세상이 좀 어둡게 보이는 건 괜찮다.
내 눈, 이제 AS 기간도 한참 지난 구형 모델이니까.
감가상각이라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진짜 문제는 밤이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홀로그램처럼 강림하시는 '그 빛' 때문이다.
처음엔 귀신인 줄 알았다.

때는 바야흐로 중2병보다 무서운 진짜 중학생 시절.
캄캄한 방에 누워있는데, 오른쪽 눈가에 스멀스멀 피어오르던 하얀 빛 덩어리.
공포영화 주인공처럼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그런데 이 녀석, 물리법칙을 무시하고 이불 속까지 따라 들어오는 게 아닌가!
하필 아랫집이 신내림 제대로 받으신 무당집이라, 그날 밤 나는 진지하게 생각했다.
'아, 올 것이 왔구나. 내가 바로 그 선택받은 아이인가…'

세월이 흘러, 이제는 '고장난 망막 님께서 보내는 이상 신호' 정도로 시크하게 치부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이 현상의 진짜 기묘함은 다른 데 있다.

칠흑 같은 어둠 속, 화장실 변기에 앉아 명상에 잠길 때다.
분명 불은 꺼져 있는데, 꼭 켠 것처럼 환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여기서부터가 코미디다. 고개를 들면, 불 꺼진 전등이 있는 바로 그 자리가 제일 밝게 빛난다!

마치 내 뇌가 상황을 제멋대로 해석하는 듯하다.
뇌: "음, 여긴 화장실이고, 저 위엔 전등이 있군. 당연히 밝아야지! 자, 주인아, 내가 알아서 밝게 보정해줬다!"

귀신보다 더 무서운 게, 가끔 내 의지를 배신하는 내 뇌와 눈의 환상적인 콜라보가 아닐까 싶다.
오늘도 내 멋대로인 내 몸의 미스터리를 곱씹으며, 오늘의 엉뚱한 넋두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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