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스토리] 라면 샤워
2026.02.13 14:39
맹학교 기숙사의 주말은 그야말로 ‘해방’ 그 자체였다. 토요일 오전 수업마저 끝난 오후, 우리에게 주어진 1.5일의 시간은 단순한 휴일이 아닌, 황금보다 귀한 자유의 시간이었다.
지겨운 자습 시간도, 귀찮은 점호도 없는 이 시간. 10시 취침이라는 규칙은 여전히 존재했지만, 그 어둠 속을 유령처럼, 아니 닌자처럼 소리 없이 누비는 스릴이야말로 기숙사 생활의 백미였다.
초등학생이었던 병칠에게 그날은 결전의 날이었다. 목표는 아래층 영팔이네 방. 마침 영팔이 방의 고참 형들이 주말 귀가를 했다는 첩보를 입수한 터였다.
병칠은 마치 군장이라도 싸듯 비장하게 이부자리를 둘둘 말아 챙겨 들었다. 층계를 내려가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왔냐?”
“왔다.”
우리는 그날 밤, 우리들만의 오붓하고도 은밀한 ‘야간 파티’를 벌였다. 라면 부스러기를 나눠 먹으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드라마에 귀를 쫑긋 하기도 하고, 선생님과 고참들의 흉내를 내며 낄낄거리다 보니 어느새 밤이 깊었다.
친구와 함께 하는 기숙사 방에서의 하룻밤은 어린 마음에 더할 나위 없는 따뜻함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인 일요일 저녁. 아쉬운 주말의 끝자락에서 병칠은 다시금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기 위해 짐을 꾸렸다. 하루 동안 영팔이 방 한구석을 차지했던 두툼한 이부자리를 다시 챙겨 들고 복도로 나섰다.
사건은 찰나의 순간에 벌어졌다.
병칠이 방문 앞에 놓인 이부자리를 제대로 고쳐 들기 위해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가 펴려는 순간이었다.
“어, 어?!”
둔탁한 충돌음과 함께 뜨거운 열기가 확 덮쳐왔다.
“앗, 뜨거!”
외마디 비명과 함께 병칠의 뒷목과 등줄기에 뜨거운 무언가가 확 끼얹어졌다. 충돌의 주인공은 후배 희준이였다.
희준이는 ‘사발면’에 뜨거운 물을 맛있게 부어, 소중하게 가슴에 안고 오던 중이었다. 앞을 보지 못하는 두 소년이, 하필이면 그 타이밍에, 그 좁은 복도에서, 위험한 자세로 부딪힌 것이다.
희준이 들고 있던 사발면 용기가 튕겨 나갔고, 펄펄 끓는 국물은 사정없이 두 사람을 덮쳤다. 병칠의 등짝은 순식간에 화끈거리는 고통으로 물들었지만, 더 큰 피해자는 정면에서 라면을 안고 있던 희준이였다.
“으앙!”
희준이의 손과 다리는 붉게 달아올랐고, 바닥에는 희준이의 뱃속으로 들어갔어야 할 꼬불꼬불한 면발들이 처참하게 널브러져 김을 내뿜고 있었다.
결국 라면은 쓰레기통이 대신 포식하게 되었고, 희준이는 그 맛있는 라면 냄새를 뒤로한 채 양호실과 병원을 오가며 한동안 화상 치료로 고생을 해야만 했다.
붕대를 감고 다니는 희준이를 볼 때마다 병칠의 마음 한구석도 따끔거렸다.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된 지금, 병칠은 책상에 앉아 글을 쓰다 무심코 뒷목을 만져본다. 손끝에 오돌토돌하게 잡히는 무언가.
‘이게 그때 그 흉터인가?’
아니면, 그저 나잇살이 붙어 두툼해진 목살인가? 병칠은 뻐근한 뒷목을 주무르며 피식 웃는다.
뜨거웠지만 즐거웠고, 아팠지만 그립기만 한 그 시절, 맹학교 기숙사의 주말 저녁 냄새가 라면 스프 향기처럼 코끝을 스치는 듯하다. 홍홍홍!
지겨운 자습 시간도, 귀찮은 점호도 없는 이 시간. 10시 취침이라는 규칙은 여전히 존재했지만, 그 어둠 속을 유령처럼, 아니 닌자처럼 소리 없이 누비는 스릴이야말로 기숙사 생활의 백미였다.
초등학생이었던 병칠에게 그날은 결전의 날이었다. 목표는 아래층 영팔이네 방. 마침 영팔이 방의 고참 형들이 주말 귀가를 했다는 첩보를 입수한 터였다.
병칠은 마치 군장이라도 싸듯 비장하게 이부자리를 둘둘 말아 챙겨 들었다. 층계를 내려가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왔냐?”
“왔다.”
우리는 그날 밤, 우리들만의 오붓하고도 은밀한 ‘야간 파티’를 벌였다. 라면 부스러기를 나눠 먹으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드라마에 귀를 쫑긋 하기도 하고, 선생님과 고참들의 흉내를 내며 낄낄거리다 보니 어느새 밤이 깊었다.
친구와 함께 하는 기숙사 방에서의 하룻밤은 어린 마음에 더할 나위 없는 따뜻함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인 일요일 저녁. 아쉬운 주말의 끝자락에서 병칠은 다시금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기 위해 짐을 꾸렸다. 하루 동안 영팔이 방 한구석을 차지했던 두툼한 이부자리를 다시 챙겨 들고 복도로 나섰다.
사건은 찰나의 순간에 벌어졌다.
병칠이 방문 앞에 놓인 이부자리를 제대로 고쳐 들기 위해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가 펴려는 순간이었다.
“어, 어?!”
둔탁한 충돌음과 함께 뜨거운 열기가 확 덮쳐왔다.
“앗, 뜨거!”
외마디 비명과 함께 병칠의 뒷목과 등줄기에 뜨거운 무언가가 확 끼얹어졌다. 충돌의 주인공은 후배 희준이였다.
희준이는 ‘사발면’에 뜨거운 물을 맛있게 부어, 소중하게 가슴에 안고 오던 중이었다. 앞을 보지 못하는 두 소년이, 하필이면 그 타이밍에, 그 좁은 복도에서, 위험한 자세로 부딪힌 것이다.
희준이 들고 있던 사발면 용기가 튕겨 나갔고, 펄펄 끓는 국물은 사정없이 두 사람을 덮쳤다. 병칠의 등짝은 순식간에 화끈거리는 고통으로 물들었지만, 더 큰 피해자는 정면에서 라면을 안고 있던 희준이였다.
“으앙!”
희준이의 손과 다리는 붉게 달아올랐고, 바닥에는 희준이의 뱃속으로 들어갔어야 할 꼬불꼬불한 면발들이 처참하게 널브러져 김을 내뿜고 있었다.
결국 라면은 쓰레기통이 대신 포식하게 되었고, 희준이는 그 맛있는 라면 냄새를 뒤로한 채 양호실과 병원을 오가며 한동안 화상 치료로 고생을 해야만 했다.
붕대를 감고 다니는 희준이를 볼 때마다 병칠의 마음 한구석도 따끔거렸다.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된 지금, 병칠은 책상에 앉아 글을 쓰다 무심코 뒷목을 만져본다. 손끝에 오돌토돌하게 잡히는 무언가.
‘이게 그때 그 흉터인가?’
아니면, 그저 나잇살이 붙어 두툼해진 목살인가? 병칠은 뻐근한 뒷목을 주무르며 피식 웃는다.
뜨거웠지만 즐거웠고, 아팠지만 그립기만 한 그 시절, 맹학교 기숙사의 주말 저녁 냄새가 라면 스프 향기처럼 코끝을 스치는 듯하다. 홍홍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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