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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1Y

*** 하필 본선 날 중요한 일정으로 참가를 포기해야 했던 졸필입니다.

<2010 시각장애인용 휴대폰 LH8600S 활용 수기>
“언젠가는”
황XX (010-XXXX-XXXX)


눈을 떴다. 몸을 뒤집는것 쯤은 이젠 가볍다. 저 앞에 무언가가 놓여있다. 지금이 기회다. 코 앞에 머리 두 개가 잠시 주춤하게 한다. 한 개 정도면 자신 있는데… 늘 그랬듯이 생각은 아주 간단했다. 무조건 직진이다. 무슨 소리가 들리는것 도 같은데 생각할 겨를이 없다. 기회는 지금이니까!
손으로 덥석 쥐었다. 한 번 흔들어 본다. 잘 모르겠다. 이럴 때는 맛을 봐야지! 차갑기도 하고 텁텁하기도 한게 그저 그렇다. 그래도 즐겁다. 바닥에 한 번 떨어뜨려도 본다. 퉁! 퉁! 하는게 퍽이나 재밌다. 앗! 손이다.

아들이 마셔버릴 뻔한 와인폰을 집어들고 시간을 본다. 녀석의 아쉬운 눈이 계속 따라오지만, 아직 넌 미성년 연소자 뭐냐 영유아 아! 돌도 안된 영유아란 말이다. 와인이던 와인폰이던간에 얼라들이 먹으면 안된단 말이지!
잘 쓰던 휴대폰이 그야말로 고장(?)이 나는 바람에 이때다 싶게 신청한 LG LH8600S 곧 와인폰이 예상을 완전 뒤엎고 선정이 되었다. 직전에도 LG텔레콤을 이용하고 있어 기계를 바꾸는 것 기존 번호를 살리는 것 모두가 비용적으로 부담이 되던 참에 번호도 살리고 통신사도 살리고 기계도 바꾸는 고마운 기회가 되어 주었다.
결과적으로 번호는 못 살렸다. 3G 덕분이다.

휴대폰을 바꾸기 위해 대리점을 방문하면 제일 먼저는 음성지원 되는 기종을 찾는다. 아주 드물게 몇 종류를 추천 받으며 음성지원 되는 부분도 손에 꼽힐만큼 드물다. 휴대폰이 마음에 들어서라기 보다는 그래도 이만큼이라도 읽어주니까 하는 심정으로 교체를 한다. 그러고는 전화걸기, 문자확인으로 대부분의 사용용도를 점령해 버린다.
와인폰을 받아들고 느꼈던 첫 인상은 야 짱이다! 였다. 바라던 메뉴, 문자 작성, 알람 관리, 각종 설정 등 자바 기반의 프로그램 외에는 잘 지원을 하는 것이다. 버튼 또한 큼직해서 효도 해야할 나이에 효도 받는 느낌이다. 근데 요 자바 프로그램들이 참 많이도 들어있다. “음성안내를 지원하지 않는 기능입니다.” 소리에 마음이 좀 시리다. 집사람이 살펴보더니 게임이 하나도 없다는 것에 많이 아쉬워 했다.

전에는 문자를 작성하다 보면 지우기 한 번 눌러도 될 것을 찜찜한 마음에 처음부터 다시 작성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성격 탓도 있겠지만, 눈 감고 말 못하는 폰하고 씨름하려 하니 외울것은 전공과목 수준이고, 조작 중에 전화라도 오면 대책 없이 당해야 했다. 잃어버린 문자, 도망가는 알람 등등등… 내가 쓰는 문자가 잘 써지는지 확인을 위해 내 번호로 문자를 보내보기도 했다.
와인폰의 보다 세밀한 음성지원은 이런 문제들을 말끔히 해결해 주었다. 문자를 작성중에 잠시 나갔다 와도 작성한 내용을 보고 이어서 쓸 수 있는 점, 전화번호나 인터넷 인증코드 같은 정확히 확인해야 하는 문자의 경우 한 자 한 자 읽어볼 수 있는 점 그리고 일일이 키 순서를 외우지 않더라도 원하는 기능들을 사용하고 설정할 수 있는 점 등…
올 봄에는 단체로 문자를 보내야 하는 일들이 있었다. 전에는 인터넷 문자사이트에 로그인하고 번호를 입력하고 꼭 컴퓨터가 있어야 가능했던 일을 와인폰 덕에 자유롭게 단체 문자를 보내게 되었다.

아이가 아빠아빠 한다. 잽싸게 와인폰으로 녹음을 한다. 알람으로도 벨소리로도 참 좋은 나만의 벨소리가 생겼다. 빠르게 메모해야 할 때에는 음성메모 기능이 참 유용하다.
FM 라디오는 사용빈도는 많지 않지만, 비 오는 날, 차 한 잔과 함께 듣는 라디오 음악과 사연는 생각해 보니 나쁘지는 않은것 같다. 지상파 DMB라도 넣어주지!
전화번호부를 뒤적거리며 그리운 얼굴들에게 안부를 전하는 일 또한 가능해졌다.
동기화를 위해 PC와 케이블을 연결하는 순간 놀랬다. 드라이버는 물론이고 필요한 응용프로그램까지 자동으로 설치를 진행해주는 센스! 드라이버를 설치하고, 응용프로그램을 또 설치하고, 기계를 연결하고, 장치를 검색하는 그런 번거러움을 한 번에 날려주니 참으로 기특하기 짝이 없다. 업그래이드까지 마치고 이동식 디스크를 열어보니, 사진, 메모, MP3 등 아주 이쁘게 정리가 되어있는 것이 정리 광인 내 취양에 잘 맞았다.
PC나 점자단말기로 독서를 하는 나에게 ‘책 읽어주는 도서관’은 아직은 낯설다. 하지만, 문자로 보내주는 책 정보, 카테고리별로 정리된 도서 목록들을 보면서 아! 이런 책도 있구나 하며 읽어볼 생각은 안하고 있다. 순전히 게으름 탓이리라!

너댓사람이 모여 설거지 내기 가위바위보를 하자고 했다. 자신있게 주먹을 내려는 순간 누군가의 휴대전화가 울리고 그 절묘한 타이밍에 야유가 쏟아졌다. 다시 가위바위보를 하기 전, 와인폰의 우물정을 세번 눌러주었다.
아까보다 더 뜨겁게 주먹을 내려는 순간, 내 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하하! 셀프통화를 이용한 장난이었다. 알아서 전화가 오는 척을 해주니 여러모로 응용할 만한 기능이다.

휴대폰 사용량이 그렇게 많지 않은 나에게 와인폰은 꼭 필요할 때에 제구실을 다해주는 그런 물건이 되었다. 물론 모바일 인터넷, 게임, 지하철 노선도 등의 편의기능들은 아직은 사용할 수 없지만, 언젠가는 시각장애인의 모바일 환경도 훨씬 좋아질 거라고 믿는다. 10여년 전, 윈도우즈프로그램들을 그림의 떡으로만 여기던 상황에 비하면 지금은 얼마나 많은 윈도우즈 응용프로그램들을 사용하게 되었는가!
와인폰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며 오늘도 아들녀석의 입속에서 폰을 구출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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