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스토리] 개구멍
2026.05.01 12:49
“개구멍.”
우리 학교 학생이라면 누구나 그곳을 그렇게 불렀다. 무슨 상회였는지, 어느 슈퍼였는지 원래 이름을 어렴풋이 들은 것도 같지만 우리에게 그런 건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다. 매점이 없는 학교에서, 굳이 교문 밖으로 나가는 수고로움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유일한 슈퍼. 그곳은 그저 ‘개구멍’이었다.
개구멍은 학교 뒷담 밖에 자리하고 있었다. 항상 굳게 잠겨 있는 철제 담장문, 그 닫힌 문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였다. 가까운 계단을 타고 2, 3층 높이로 올라가 담장 밖을 향해 절도 있게 손뼉을 치는 것.
‘딱, 딱, 딱.’
이른바 ‘개구멍 박수’라 불리던 이 소리는, 마치 북한 방송에서나 들을 법한 묘하게 각이 잡힌 둔탁한 소리와 닮아 있었다. 허공에 그 박수 소리가 퍼지면 어김없이 담장 너머에서 대답이 들려오곤 했다.
“뭐 줄까?”
슈퍼 주인 할머니, 혹은 그 아들인 아저씨의 목소리였다. 우리가 쩌렁쩌렁 필요한 것들을 외치고 나면 본격적인 거래가 시작됐다. 키가 작은 꼬맹이들은 철제 담장문 아래의 좁은 틈으로 꼬깃꼬깃한 돈을 밀어 넣고 물건을 받았고, 키가 훌쩍 큰 형들은 담장 위로 팔을 뻗어 거래를 성사시켰다. 굳게 닫힌 문 아래위로 돈과 물건이 옹색하게 오가는 그 풍경을 보고, 누군가 찰떡같이 ‘개구멍’이라는 이름을 붙였던 모양이다.
주된 밀거래(?) 품목은 과자와 라면, 빵, 아이스크림 같은 군것질거리였다. 가끔은 기숙사에서 다 떨어진 비누나 치약 같은 세면도구를 급하게 조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개구멍을 이용하는 일이 마냥 평탄치만은 않았다. 하필 개구멍 박수를 치는 곳이 중고등부 건물과 남자 기숙사 옆 계단이었기 때문이다. 수업 시간, 창밖으로 누군가 개구멍 박수를 치고 부스럭거리며 물건을 받아 가는 소리가 들리면 교실 안은 묘한 긴장감에 휩싸였다. 그리고 쉬는 시간 종이 울리기 무섭게, 복도에서는 돌아오는 녀석을 덮쳐 먹을거리를 강탈하려는 치열한 야생의 사냥이 벌어지곤 했다.
더 얄미운 건 기숙사 창문에 매달린 형들이었다. 할머니 성대모사에 도통한 어떤 형은 밖에서 ‘딱, 딱’ 하는 박수 소리만 들리면 창문 틈에 입을 대고 먼저 선수(?)를 쳤다.
“뭐 줄까?”
그 가짜 목소리에 감쪽같이 속아 넘어간 순진한 녀석들이 허공에 대고 열심히 라면과 과자를 주문할 때면, 기숙사 안에서는 킥킥대는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돌이켜보면 참 이상한 일이다. 사실 학교 정문을 나서 조금만 걸어가면 비슷한 다른 가게들도 얼마든지 있었다. 게다가 보이지 않는 상태로 주문하다 보니, 개구멍 너머에서 엉뚱한 물건을 건네주는 배달 사고도 심심치 않게 일어났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그 불편한 개구멍을 굳이 고집했을까.
단순한 귀차니즘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매일같이 계단을 오르내리며 생긴 관성 같은 습관이었을까. 어쩌면 굳게 닫힌 문을 사이에 두고, 우리만의 암호를 보내듯 손뼉을 치고 물건을 받아내는 그 소소한 재미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딱, 딱, 딱.’
“뭐 줄까?”
“사발면 하나요.”
우리 학교 학생이라면 누구나 그곳을 그렇게 불렀다. 무슨 상회였는지, 어느 슈퍼였는지 원래 이름을 어렴풋이 들은 것도 같지만 우리에게 그런 건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다. 매점이 없는 학교에서, 굳이 교문 밖으로 나가는 수고로움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유일한 슈퍼. 그곳은 그저 ‘개구멍’이었다.
개구멍은 학교 뒷담 밖에 자리하고 있었다. 항상 굳게 잠겨 있는 철제 담장문, 그 닫힌 문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였다. 가까운 계단을 타고 2, 3층 높이로 올라가 담장 밖을 향해 절도 있게 손뼉을 치는 것.
‘딱, 딱, 딱.’
이른바 ‘개구멍 박수’라 불리던 이 소리는, 마치 북한 방송에서나 들을 법한 묘하게 각이 잡힌 둔탁한 소리와 닮아 있었다. 허공에 그 박수 소리가 퍼지면 어김없이 담장 너머에서 대답이 들려오곤 했다.
“뭐 줄까?”
슈퍼 주인 할머니, 혹은 그 아들인 아저씨의 목소리였다. 우리가 쩌렁쩌렁 필요한 것들을 외치고 나면 본격적인 거래가 시작됐다. 키가 작은 꼬맹이들은 철제 담장문 아래의 좁은 틈으로 꼬깃꼬깃한 돈을 밀어 넣고 물건을 받았고, 키가 훌쩍 큰 형들은 담장 위로 팔을 뻗어 거래를 성사시켰다. 굳게 닫힌 문 아래위로 돈과 물건이 옹색하게 오가는 그 풍경을 보고, 누군가 찰떡같이 ‘개구멍’이라는 이름을 붙였던 모양이다.
주된 밀거래(?) 품목은 과자와 라면, 빵, 아이스크림 같은 군것질거리였다. 가끔은 기숙사에서 다 떨어진 비누나 치약 같은 세면도구를 급하게 조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개구멍을 이용하는 일이 마냥 평탄치만은 않았다. 하필 개구멍 박수를 치는 곳이 중고등부 건물과 남자 기숙사 옆 계단이었기 때문이다. 수업 시간, 창밖으로 누군가 개구멍 박수를 치고 부스럭거리며 물건을 받아 가는 소리가 들리면 교실 안은 묘한 긴장감에 휩싸였다. 그리고 쉬는 시간 종이 울리기 무섭게, 복도에서는 돌아오는 녀석을 덮쳐 먹을거리를 강탈하려는 치열한 야생의 사냥이 벌어지곤 했다.
더 얄미운 건 기숙사 창문에 매달린 형들이었다. 할머니 성대모사에 도통한 어떤 형은 밖에서 ‘딱, 딱’ 하는 박수 소리만 들리면 창문 틈에 입을 대고 먼저 선수(?)를 쳤다.
“뭐 줄까?”
그 가짜 목소리에 감쪽같이 속아 넘어간 순진한 녀석들이 허공에 대고 열심히 라면과 과자를 주문할 때면, 기숙사 안에서는 킥킥대는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돌이켜보면 참 이상한 일이다. 사실 학교 정문을 나서 조금만 걸어가면 비슷한 다른 가게들도 얼마든지 있었다. 게다가 보이지 않는 상태로 주문하다 보니, 개구멍 너머에서 엉뚱한 물건을 건네주는 배달 사고도 심심치 않게 일어났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그 불편한 개구멍을 굳이 고집했을까.
단순한 귀차니즘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매일같이 계단을 오르내리며 생긴 관성 같은 습관이었을까. 어쩌면 굳게 닫힌 문을 사이에 두고, 우리만의 암호를 보내듯 손뼉을 치고 물건을 받아내는 그 소소한 재미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딱, 딱, 딱.’
“뭐 줄까?”
“사발면 하나요.”
댓글 0
| 번호 | 제목 | 날짜 | 조회 수 |
|---|---|---|---|
| » |
]맹스토리] 개구멍
| 2026.05.01 | 4 |
| 31 | 거대한 눈치게임 | 2026.03.13 | 153 |
| 30 | [맹스토리] 케이블카 | 2026.03.08 | 141 |
| 29 | [초단편] 농담(濃淡) | 2026.02.21 | 181 |
| 28 | [맹스토리] 라면 샤워 | 2026.02.13 | 199 |
| 27 | [초단편] 퀀텀의 아이들 | 2026.02.07 | 257 |
| 26 | [맹스토리] 개선장군 | 2026.02.01 | 209 |
| 25 | [맹스토리] 라면 대첩 | 2026.01.31 | 204 |
| 24 | 센스리더 앱 프레임워크 | 2026.01.25 | 388 |
| 23 | 내 눈에 엘이디 | 2026.01.20 | 403 |
| 22 | AI와 로봇이 만났을 때 | 2026.01.17 | 258 |
| 21 | [초단편] 알잖아 | 2026.01.17 | 317 |
| 20 | 귀에 코팅하기 | 2026.01.03 | 548 |
| 19 | 반갑다. Rust REPL! | 2025.07.16 | 634 |
| 18 | 맹인 개발자 자리에 없는 것들 | 2025.05.15 | 732 |
| 17 | 점심 메뉴 | 2024.12.09 | 1074 |
| 16 | 컵라면 점자 | 2024.11.15 | 618 |
| 15 | 마라탕 | 2024.11.08 | 1163 |
| 14 | [초단편] 우산 | 2024.11.04 | 691 |
| 13 | [초단편] 지하실 | 2024.10.17 | 676 |